현재시간
0시 50분. 봄베이 공항 도착. 일본의 나리타 공항을 이륙하고 만
12시간을 비행한 셈이다. 비행기에서 제공한 음식이 안 맞아 목구멍으로는
계속 신물이 올라온다.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든 되겠지
… 모든 것이 편안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봄베이 공항의 컨베어 벨트가 승객들의 짐을 토해낸다. 내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저쪽 구석에 장발의 일본인이
보인다. 무척 고요한 느낌을 준다. 성원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짐을 챙기고 있는데 그가 와서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넨다. 내게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랜
직장생활. 똑같은 일의 반복. 내 경우야 그래도 샤프한 직종이건만
그래도 결국 똑같은 반복 ….
컨베어 벨트가 짐을 토해내는
것을 보니 그 반복성이 감탄스럽다. 아름답기까지 하다. 철저히
계산된 속도, 그에 따르는 당연한 소음, 그 위에 타고 나오는 짐들,
한 바퀴 돌고 주인이 없으면 사라졌다가 여러 짐들 사이에서 다시
나타나는 짐. 경이로운 수학적인 논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디로 간다? 이 야밤에 남의 나라 공항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순간 성원이의 노래가 생각난다.
보아라 수야
저 흰
구름 머물지 않잖니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흘러가잖니
푸르러 푸른 드넓은 하늘
끝없이 간 곳
노을에 비친 고향의
노래
나를 부른다
보이지 않아도 가자 가자 가자꾸나
아니 가면 어쩔런가
쉬었다 갈까
들리는 소리 따라
걸어
울퉁불퉁 고개
울퉁불퉁 가다보면
또 다른 새길
길고도 길어 보이지 않네
알 수가 없네
해 뜨는 나라
달뜨는 고향
어드메냐 …
가자 가자 가자꾸나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가자 가자꾸나
날이 저문다
그래 가자! 가자꾸나, 보이지 않아도 … 이 야밤에
아니가면 어쩔런가 … 가다 못 가면 쉬었다가지 … 내일 아침에
회사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 헌데 어디로 간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장을 벗어난 새들이 자신들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몸을 부르르 떨듯 -. 이 충만한 자유, 나는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 나도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일본인이 또 말을 건넨다. 자기는
이것이 두 번째 인도여행이고 '푸나'로 간단다 내게 갈 곳을 정했는지
묻는다. '푸나'라고 대답했다.



넓은 초원 … 성난
코끼리가 한 사내를 쫓는다. 다급해진 사내는 칡넝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아차! 우물바닥에는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내려가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하고 칡넝쿨에 매달려 있는데 저런!
쥐란 놈이 칡넝쿨을 쏠기 시작한다. 그때 어디선가 벌들이 날아와
칡넝쿨에 집을 짓는다. 이윽고 벌집에서 꿀이 떨어진다. 칡넝쿨에
매달린 사내는 달콤한 꿀맛에 취한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막연한 두려움. 그야말로 막연하게 다가오는 두려움
… 그 막연함 뒤에는 확실함이 있기 때문에 이 막연함은 더욱 막연해진다.
코끼리 때문에 이 우물 속으로 기어 들어왔고, 뱀 때문에 칡넝쿨에
매달린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 문제는 저 쥐란 놈이 세월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막연히 매달려 있기만 할 수는
없는데도 막연히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막연한 느낌은
지구의 중력이 있는 한 계속될 테고 … 지구의 중력, 삶의 무게-.많은
사람들이 삶에 무게에 눌려있음을 본다.
이대로 늙는가? 남자나이
서른 아홉, 어린 나이는 아니다. 세상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세상사 속에는 나도 들어있다.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버려야 할 것인가? 어느 날, 지하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보름달이 떴다. 산으로
올랐다. 오랜만에 색소폰을 분다. 몇 점 안되는 구름이 달을 가린다.
멀리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날아온다. 고요한 산
속의 밤공기가 내 몸을 휘도는가 싶더니 달이 얼굴을 내민다. 조용한
산, 누군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다가 방치한대로 둔 이곳을 우리는
성(城)이라고 부른다. 둘레 50미터 정도, 높이 7미터 정도 되는
원형 구조물에 동남서 세 군데에 아치형 입구가 있고 바닥에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달빛을 받으며 색소폰을 부는데 서쪽
문으로 누가 나타난다. 그 뒤를 이어 두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
순간 긴장된다. 그 중 리더인 듯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어둠 속에서 부딪는 눈동자. 긴장 속에 서로의 안광이
마주쳤다. 순간, 서로 크게 웃었다.
'아니 김형 아니오…'
'아니 H씨,…'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H였다. 보름달이 떴기에
오랜만에 이곳엘 들렀는데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등뒤에서 무엇을 꺼낸다.
순간 '스릉'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들리더니, 시퍼런
달빛이 반사된다. 일 미터가 넘는 커다란 칼이다.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보는 서슬 퍼런 진짜 칼이다, 그가 웃통을 벗는다. 그리고는 그
큰칼을 마치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가볍게 놀린다. 오랜 세월
칼과 가까이 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몸놀림이 서서히 고조된다.
허공을 가르는 칼소리에서 대단한 위력이 감지된다. 칼을 다루며
그는 삼매에 빠져든다. 순간 그의 기합소리가 들린다.
'이얍,
핫싸!'
그것은 분명 인간의 소리인데 난생 처음 듣는
소리다. 마치 무슨 동물의 울부짖음 같다. 밤공기를 가르고 들리는
괴성 … 달빛을 반사하는 시퍼런 광채가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한참 후 서서히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칼을 거둔다.
침묵이 흐른다. 내 가슴속에서는 그 괴성의 느낌이 진한 여운으로
자리하고 있다.
'재미있군요. 헌데 아까 그 소리는 참으로 이상했소.'
이렇게 그와 달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무사가 칼을 쓴다는
것은 상대편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가장 긴박한 순간이다.
그때 나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기합소리가 나온다. 그 소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곳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원초적 소리를 잊고 산다. 의식이 자연적인 소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태리의 벨칸토 창법이다. 인간의 몸통을 공명시켜서
… 그는 우리가 목소리에서까지 진짜소리가 아닌 가식이 있음을
말한다.
우리의 전통 창(唱)은 그 본성(本聲)을
찾아서 하는 음악이고 … 우리는 말을 할 때 밖으로 내뱉으며 말을
하는데 원래 인간 목청의 발음 구조는 안으로 마시면서도 말을 할
수 있다. 하모니카의 원리와 같다. 헌데, 태어나면서부터 기존의
언어에 따르다보니 밖으로 뱉는 기능은 발달하고 안으로 마시는
기능은 퇴화되었다. 안으로 마신다는 것은 우리가 놀랄 때 지르는
비명이나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며 목젖을 울릴 때 나오는 소리를
생각하면 된다. 그 들이마시는 소리로 대화는 물론 음악적인 스케일도
가능하다. 그는 그 들여 마시는 소리로 어느 무용가와 함께 무대를
꾸민 적도 있다.
칼을 들고 공격할 때는 자연스럽게 뱉는 소리가
나오고, 방어하는 때는 들여 마시는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소리에 도가 트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준다. 소리에 도가 트면
귀곡성(鬼曲聲), 귀신이 우는 소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도가 트는
것을 타통이라고 하는데 타통을 해야 영혼의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도 했다.
달밤에 칼을 휘두르는 것도 신기한데,
그의 박식한 소리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악평론가라는 직함으로 먹고살고, 게다가 서양음악이 모든 음악의
최고봉인줄 알고 살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온 혼란 때문에
삶의 궤도 자체를 수정해야 될 상황에 직면해있던 때였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나는 전생에 칼집이였어요. 칼을 잡았을 때 오는
그 마음의 고요함 … 그러나 칼이란 사람을 죽이는 흉기 … 칼을
좋아하지만 그 흉기를 통해서 깊은 삼매에 빠진다는 것이 너무 싫어요.
언젠가는 칼을 버리고도 그 깊은 평안을 맛 볼 수 있겠지요.'
2시간 여에 걸친 그와의 대화, 언젠가 달이 뜨면
다시 오겠다고 악수를 하고 사라지는 그를 보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칼을 메고 다니나 … 달이 이미 서쪽으로 기운
것을 보니 새벽 한 시는 넘었겠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야릇한 기분이 든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다. 잠이 안 온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내 의식 저 밑바닥에서 뜻모를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차를 몰고
잘 가는 술집으로 갔다. 많은 술을 마셨다. 그러나 무엇엔가 놀란
듯한 가슴이 가라앉지 않는다. 술도 취하지 않는다.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러다가
무엇엔가 놀란 듯 잠을 깼다. 맑은 겨울날, 창호지에 눈이 부실
정도로 내리 쏘이는 햇빛-.온 방안이 밝고 환하다. 저 빛 … 그리고
이 포근함 … 한참을 넋을 잃고 뜻모를 환희에 젖어있는데 … 뭔가
하나 빼먹은 느낌이 든다. 이 고요한 환희가 100%가 아니고 무언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 아! 맞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잊어먹은 게 있었다.
오늘이 화요일, 회사에 가는 것을 깜빡했다.
술
마시며 놀다가 회사 가는 걸 잊어먹었다고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다. 모두 미쳤다고 그러지 제 정신이라고 하겠는가! 술 마시다가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일상사를 잊고만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가볍게-. 누적된 피로, 쌓이는 스트레스에 인간 내부에 장치된
어떤 안전장치가 작동된 모양이다.
피곤해 죽겠다.
이대로 더 이상 가다간 죽겠다. 어차피 죽을 바엔 실컷 놀고나 죽자.
게으름도 실컷 펴보고, 잠도 실컷 자고, 여행도 다니고 …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우리 나라가 세계 제일이라는데 이는 조직생활의
스트레스, 반복되는 리듬 … 이런 것 때문이리라.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고. 재미는 하나도 없고-. 안식년(Sabbatical year)이라도
있어 한 일 년 정도 푹 쉬면 좋겠다마는 당장 일이 많으니 쉬겠다는
말은 안나오고. 게다가 삶은 왜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만
가는지….
제일 무서운 놈은 역시 칡넝쿨을
갉아먹는 쥐다. 세월을 갉아먹는 무심한 쥐 … 그렇다고 칡넝쿨을
놓을 수도 없고 … 돌연, 그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